아래층 침대에서 콜록콜록 기침하는 소리와 함께 어미 잃은 새끼강아지마냥 끙끙 앓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기에 덩달아 잠을 설치고 있는 쿠라모치였다. 1시간 전까지만 해도 아래층을 향해 시끄러워 죽겠네! 감기는 또 어쩌다가 걸려서는 사람 잠도 못 자게 만드는 거냐? 버럭 하고 소리를 질러댔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초조함이 더 커져만 간다. 저 또한 독한 감기로 앓아 누웠던 경험이 있지만 365일 24시간 건강할거라 생각했던 저 바보가 저리도 앓을 정도라니......생각보다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거 아니야? 이런 저런 생각에 좌로 우로 몸만 뒤척이고 있었다. 자정을 지나 새벽으로 넘어가자 기침소리와 앓는 소리가 점점 심해졌기에 쿠라모치는 얼굴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잠자긴 글렀구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침대 계단을 밞고 내려오자 모로 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사와무라가 보였다. 땀을 얼마나 흘리고 있는 건지 입고 있는 티셔츠는 군데군데 젖어있었고, 목덜미는 축축하게 번들거린다. 쿠라모치는 답지 않게 조심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야......사와무라, 많이 아프냐?"
"......선배......왜 안 잠까......"
아래층에서 콜록콜록 끙끙 난리를 치는데 잠이 오겠어? 내가 귀머거리냐? 퉁명스레 말을 내뱉으며 쿠라모치는 침대맡에 걸터앉아 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사와무라의 어깨를 조심스레 잡곤 천천히 바로 눕혔다. 어깨만 잡았음에도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열기가 상당했기에 쿠라모치는 당황한 얼굴로 사와무라를 바라보았다. 이마엔 송글송글 땀이 맺혀있고, 얼굴은 전체적으로 붉게 열이 올라있었다. 쿠라모치는 가볍게 혀를 차고선 자신이-사와무라에게-낼 수 있는 가장 다정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타카시마 부부장에게 아침 일찍 연락할 테니 병원에 다녀와."
"......괜찮슴다......사나이......사와무라 에이......"
무슨 말을 할지는 뻔했지만 그조차도 마무리하지 못하곤 콜록콜록콜록 기침을 해대는 꼴이 딱했기에 쿠라모치는 일어나 깨끗한 수건을 꺼낸 다음, 찬물을 흠뻑 적셔 물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 그것을 짰다. 후끈후끈 열이 오르는 이마에 차가운 수건이 닿자 사와무라는 잠시 몸을 움찔거리더니 이내 피식 김빠지는 웃음소리를 낸다.
"......고맙슴다."
"......웬 감기야? 나한테 옮기기만 해봐. 그간 아껴놓았던 레슬링 기술들을 전부 다 퍼부어줄 테니까."
아직 웃을 기운은 있는지 약한 웃음소리는 내고 있었지만 여전히 힘들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다 큰놈이 갓난아기도 아니고 뭘 이렇게나 앓는 거야?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지만 이마에 찬수건을 올려주는 것 외엔 딱히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숨소리가 가빠지자 마음이 더욱더 초조해진다. 쿠라모치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을 감고 있던 사와무라가 자신은 괜찮으니까 얼른 올라가 잠을 청해보라고 한다. 누군 자기 싫어서 이러고 있는지 알아? 평소처럼 띠껍게 대꾸하려다가 쿠라모치는 말을 삼켰다. 한참 뜸을 들이다 그래, 짧은 대답을 하고선 자신의 침대 위로 올라온 쿠라모치의 귀에 여전히 사와무라의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은 벌써 새벽 2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여전히 저 망할 기침은 그칠 생각을 않고 있었다. 작게 한숨을 내쉰 쿠라모치는 알람을 5시 30분으로 맞춰놓곤 눈을 감았다. 알람이 울리자마자 타카시마 부부장에게 전화해야겠다 생각하면서 말이다.
아침 일찍 타카시마 부부장에게 전화를 해 사와무라가 병원에 다녀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쿠라모치는 피곤에 찌른 얼굴로 식당 안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쿠라모치의 귀에 자신을 부르는 미유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쿠라모치, 사와무라는? 이 자식은 하여간......아침 인사도 생략하고 자기가 궁금한 것부터 묻고 앉아있어. 쿠라모치는 얼굴을 구기며 대답했다. 감기 걸려서 앓아 누웠다, 왜?
“뭐? 감기?”
감기라니? 바보는 감기 안 걸리잖아.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하는 미유키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얼굴을 구기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쿠라모치의 반응에 그제서야 왜 그런 표정을 하고 있냐는 듯 뚫어져라 눈을 마주쳐오는 미유키였다. 배식을 받은 뒤, 미유키의 반대편에 밥과 반찬이 쌓여있는 식판을 내려놓고선 쿠라모치가 말했다. 목소리엔 쿠라모치 스스로도 당황스러울 만큼 한숨이 잔뜩 섞여있었다.
“웃을 일이 아니라고. 간밤에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진짜 사와무라가 어떻게 잘못되는 줄 알았단 말이야. 하기야 나도 뭐, 처음엔 녀석이 코를 훌쩍이며 연신 기침을 해대길래 감기 따위나 걸리고 난리냐며 비웃곤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밤새도록 죽어라 앓아대지 뭐야. 결국 타카시마 부부장이 이른 새벽부터 기숙사에 들러 병원에 데려갔어. 오늘 연습은커녕, 수업도 못 들어갈 거다.”
밥 먹으러 오기 전에 보니까 시체 같은 몰골로 병원에서 돌아와 약 먹고 바로 눕던데 괜찮은지 모르겠네. 하루도 빼먹지 않고 타이어를 허리에 매고 달리고, 새벽까지 남아서 투구 연습을 해대면서도 기운이 넘치다 못해 폭발을 하더니......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이런 저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니 밤새 아팠고, 병원을 다녀왔고, 연습은커녕 수업도 못 들어간다고 짧게 말하려던 본 의도와는 다르게 말이 점점 길어졌다. 이 와중에 미유키는 여전히 상황판단이 안 되는지 자신을 향해 짓궂은 목소리를 낸다.
“애절하다, 애절해. 쿠라모치, 후배를 걱정하는 네 마음이 나에게까지 전해져서 밥이 안 넘어갈 지경인데? 어디 보자, 가슴은 안 찢어졌어?”
미유키가 고개를 쭉 빼고선 자신의 가슴 부근을 들여봤을 때, 주먹을 들어 머리통을 때려줄까 잠시 고민한 쿠라모치였지만 기가 막힌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며 미유키를 빤히 바라보는 것이 다였다. 웃기지마, 말은 그렇게 해도 내가 모를 줄 알아?
미유키가 사와무라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눈치챈 건 언제부터였을까? 분명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능글맞게 웃으며 놀리듯 참견하고, 밉살스러운 말로 속을 뒤집어놓긴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타입은 결코 아니었으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유키가 사와무라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할게 분명했다. 그런 미유키의 마음을 어느 순간부터 눈치챘다는 건 아마 나도......여기까지 생각한 쿠라모치가 진지한 목소리를 냈다.
“어이, 미유키. 좀 솔직해져라.”
“......?”
“나한테 아침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사와무라는 어디 있냐고 물어온 게 누군데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사와무라에 대해서 누구보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놈이......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하여간 갑갑하다니까. 가차없는 비난에 미유키는 잠시 우물거리다 이내 입을 다물고선 뒷머릴 긁적였다. 거봐, 내 말이 맞잖아. 짐작하고 있었지만 왠지 자신의 말로 인해 확인사살을 당한 느낌이었기에 쿠라모치는 묵묵히 입 안으로 밥을 떠넣었다. 답답하게 구는 미유키가 짜증나는 건지, 아니면 그를 걱정하고 있는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이 감정은 뭔지......더없이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연습이 시작되었지만 평소와는 달리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미유키의 모습에 쿠라모치는 쯧, 짧게 혀를 차보았다. 저렇게 정신을 놓고 있을 거면 기숙사에 들러보라고 말했던 자신의 말에 왜 태연한척하며 그럴 것까지야 라고 허세를 부린 거야? 하여간 답답한 놈이라니까. 얼이 단단히 빠진 미유키의 상태에 대해 조노가 물었을 때도 그저 몰라 짧게 대답을 하는 것으로 충분했겠지만 오늘따라 이상하게 사족을 덧붙이고 싶었다. 바보라서 그래, 바보라서. 알 수 없는 쿠라모치의 대답에 애꿎은 조노만 어리둥절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시간이 흘러 타격 연습을 시작했을 때, 저 멀리서 미유키가 오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오노에게 무어라 말을 하며 보호대를 벗는 것이 뒤늦게나마 기숙사로 가서 사와무라의 상태를 확인하려는 게 뻔했기에 쿠라모치는 배트를 휘두르던 것을 멈추곤 미유키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순간 약속이나 한 것처럼 눈이 딱-하고 마주친다. 언제나 여유로운 미유키 카즈야답지 않게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당황한 듯 한순간 눈을 크게 떴기에 쿠라모치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픽, 바람 빠지는 웃음 소리를 내고선 다시금 배트를 휘두르는 쿠라모치였다. 미유키의 모습이 점점 멀어질 때마다 배트를 휘두르는 팔에 힘이 더 더 들어간다. 미유키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쿠라모치는 있는 힘을 다해 배트를 휘둘렀다. 미유키가 사와무라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이유는 분명 나 또한......배트에 공이 부딪히며 맑은 소리가 울렸다. 힘껏 치고 나면 마음이 좀 홀가분할까 싶었지만 여전히 무겁고, 종잡을 수도 없었다. 바보라서 그래, 바보라서. 조노에게 했던 말이 미유키뿐만 아니라 저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쿠라모치는 입을 꾹 다물곤 배트를 다시 한번 더 휘두르기위해서 팔에 힘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