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꼭꼭 씹어 삼키고 있던 후루야의 귀에 장난기 서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연스럽게 후루야의 모든 신경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미유키와 쿠라모치에게 집중된다. 큰소리로 인사를 하며 식당 안으로 들어오고도 남을 시간이었지만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은, 사와무라에 관한 대화임이 틀림없었다. 안 그래도 느린 편인 젓가락질이 점점 느려져 아예 허공에 멈췄다.
“웃을 일이 아니라고. 간밤에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진짜 사와무라가 어떻게 잘못되는 줄 알았단 말이야. 하기야 나도 뭐, 처음엔 녀석이 코를 훌쩍이며 연신 기침을 해대길래 감기 따위나 걸리고 난리냐며 비웃곤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밤새도록 죽어라 앓아대지 뭐야. 결국 타카시마 부부장이 이른 새벽부터 기숙사에 들러 병원에 데려갔어. 오늘 연습은커녕, 수업도 못 들어갈 거다.”
“......”
“밥 먹으러 오기 전에 보니까 시체 같은 몰골로 병원에서 돌아와 약 먹고 바로 눕던데 괜찮은지 모르겠네. 하루도 빼먹지 않고 타이어를 허리에 매고 달리고, 새벽까지 남아서 투구 연습을 해대면서도 기운이 넘치다 못해 폭발을 하더니......”
쿠라모치의 말에 후루야는 지난 밤, 평소와는 달리 조금 이른 시간에 투구연습을 마치던 사와무라를 떠올렸다. 평소처럼 목소리는 컸지만 어딘가 모르게 힘없는 얼굴로 연신 콜록콜록 기침을 내뱉고 있었다. 어디 아프냐고 물어볼까? 짐짓 심각한 얼굴로 고민을 하는 새에 내일 보자, 짧은 인사를 하며 사와무라는 돌아선다. 감기에 걸린 거였구나. 어디 아프냐고 물어볼걸. 누군가가 가슴 한 켠을 누르고 있는 듯 무거운 기분이 들었다.
“애절하다, 애절해. 쿠라모치, 후배를 걱정하는 네 마음이 나에게까지 전해져서 밥이 안 넘어갈 지경인데? 어디 보자, 가슴은 안 찢어졌어?”
쿠라모치를 향한 미유키의 말이 어째 저 들으라 하는 말인 것 같아 흠칫 놀라는 후루야였다. 물론 놀랐다고는 한들 이 미묘한 표정의 변화를 알아차린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슬며시 내려다본 가슴은 찢어지지 않은 채 잘만 있었다. 그 언젠가, 기억도 나지 않는 누군가의 입에서 후루야군은 다 좋은데 말이야 라며 단점으로 꼽혔던, 무표정한 얼굴이 오늘만큼 고마웠던 적이 없었다. 후루야는 먹고 있던 밥을 고스란히 남기고선-물론, 근처에 앉아있던 조노가 소리쳤다. 어이, 후루야! 밥 남기지마! 먹어야 연습을 하지!-일어나 식당 밖으로 나선다. 쿠라모치와 미유키가 무어라 더 대화를 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이미 머릿속은 사와무라가 감기에 걸렸고, 아프다는 것으로 가득 차있었으니까.
하늘은 더없이 새파랗고, 하얀 구름이 천천히 흐른다. 수업시간, 멍하니 창 밖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후루야에게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후루야! 수업 안 듣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호통에 조금 놀라 죄송하다는 반응을 보이고선 책을 들여다보는 척을 했지만 그런다고 한들 수업에 집중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어디 아프냐고 물어볼걸.”
그 누구도 들을 수 없을 만큼,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려본다. 아프냐고 물어보지 못했던 지난 밤이 자꾸만 마음에 걸려 응어리가 지듯 몽글몽글 피어 올랐다. 그때, 책상 위로 툭 하고 꼬깃꼬깃 접힌 흰 종이가 날아들어왔다. 천천히 펼쳐본 종이엔 후루야군, 곧 점심 시간인데 같이 에이쥰군에게 가보지 않을래? 라는 내용이 동글동글한 글씨체로 적혀있었다. 종이가 날아온 곳을 바라보니 아니나다를까, 코미나토가 선생님의 눈을 피해 싱긋 미소 짓고 있다. 후루야는 코미나토가 건넨 종이를 다시 한번 또박또박 읽어보았다. 답을 하기 위해 쥐고 있던 연필을 종이에 가져다 댄다. 하지만 연필은 종이를 찍었다가 떨어졌고 다시 점을 찍었다가 떨어졌다. 한참 동안 그러고 있던 후루야는 드디어 결심이 선 듯 끄적끄적 글씨를 적은 뒤, 고이 접은 종이를 코미나토의 책상 위에 툭 하고 던졌다. 코미나토는 잽싸게 종이를 집어 들고선 조심스럽게 펼쳐보았다. 동글동글한 자신의 글씨 아래 후루야다운, 조금은 무성의한 글씨가 보인다.
[다녀와.]
읽을 것도 없이, 짧게 적어놓은 후루야의 대답에 코미나토는 픽, 답지 않게 헛웃음 소리를 내어 웃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후루야는 방금 전, 선생님께 야단맞았던 사실을 그새 잊은 모양인지 좀 전과 같은, 멍한 표정으로 창 밖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좋은 아침임다!”
식당 안으로 떠들썩하게 들어서는 사와무라에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곧바로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어이, 사와무라. 죽을 뻔 했다면서? 에이, 저 얼굴 좀 봐. 죽을뻔한 얼굴이 아닌데? 말짱하구먼, 목소리도 여전히 크고. 모두의 말에 주먹을 불끈 쥐며 말하는 사와무라였다. 당연하죠! 감기 따위에 굴복하는 그런 나약한 사람이 아님다! 자, 말끔하게 다 나았으니 식사를 해보실까! 밥그릇에 한 가득 밥을 담는 사와무라를 코미나토가 말리느라 정신이 없다. 에이쥰군, 그 동안 계속 죽만 먹었잖아. 갑자기 많이 먹으면 탈나. 코미나토에게 웃으며 끄덕 없다고 말하는 그 옆얼굴을 후루야는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몸은 좀 어떠냐고 물어봐야지, 다시 한번 마음을 다 잡는다. 그때였다.
“어이, 사와무라.”
“네?”
미유키가 사와무라를 부르자 갑자기 약속이라도 한 듯 주변이 고요하게 가라앉는다. 왜 불렀냐는 표정으로 사와무라는 미유키를 향해 말똥말똥한 눈을 해 보였다.
“어쩌냐?”
“......?”
“네가 침대에서 죽치고 누워있는 동안 후루야는 엄청......엄청나게 열심히 연습했는데. 이로써 실력차가 더 벌어지는 거 아니야?”
미유키의 말이 끝나면 사와무라에게 몸은 좀 어떠냐고 물어보려 했던 후루야는 그 순간, 마시고 있던 물을 뿜을뻔했다. 약하게 사레가 들려 가슴을 두드리고 있는 후루야의 귀에 분노로 가득 찬 사와무라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죽었다 살아난 사람한테 그러고 싶슴까! 성격 나쁜 거 자랑하냐! 아니, 그전에 며칠 연습 안 했다고 해서 실력차가 그렇게 확 벌어지지 않거든! 미유키 카즈야 이 자식! 두고 보자! 얼른 밥 먹고 운동장 뛰러 가야지! 후루야, 넌 또 왜 그렇게 쳐다봐! 내가 질줄 알고!”
아닌데, 그게 아니라......무어라 대답할 말이 없어 멍한 표정을 하고 있는 후루야의 앞에 사와무라는 식판을 내려놓으며 열불을 내기 시작했다. 연습을 열심히 했다, 이거지! 얼마나 했어! 설마! 설마! 밤도 샜냐? 비겁하다, 후루야! 삿대질까지 해가며 후루야를 닦달하는 사와무라에게 코미나토가 딴지를 건다. 에이쥰군, 솔직히 연습을 열심히 한 게 비겁한 일은 아니지. 그 말에 잠시 말 문이 막힌 듯 금새 고양이 눈을 해 보이는 사와무라였다.
“......좀......어때?”
“엥? 뭐라고?”
“몸은 좀......어떠냐고......”
아직 안 좋으면 더 쉬어. 머릿속에서 연거푸 되뇌었던 말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후루야의 입 밖으로 나왔다. 드디어 사와무라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달했다는 사실에 기뻐할 틈도 없이, 사와무라는 이를 악물고선 특유의 표정으로 콧김까지 내뿜으며 후루야에게 바짝 얼굴을 들이대며 양주먹을 불끈 쥐고선 소리치기 시작했다.
“더 쉬어? 더 쉬어어? 내가 쉴 동안 또 혼자서 열심히 연습하려고 그러지! 누가 모를줄알고! 이겼다고 생각 마라, 후루야! 나도 오늘부터 죽도록 연습할거야!”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일단 밥을 빛의 속도로 먹은 다음, 한 바퀴라도 더 뛰어야겠다!”
젓가락을 야무지게 움켜잡고선 그야말로 밥을 입안으로 밀어 넣는다. 그 모습을 얼빠진 얼굴로 바라보고 있던 후루야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미유키를 쳐다보았다.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얼굴 위로 미소가 가득하다. 평소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말에 울컥했던 적은 가끔 있었지만 그 모든 일들을 다 합쳐봐도 오늘만큼 미유키 카즈야, 그가 미웠던 날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후루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