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교길이라고 말하기엔 꽤나 늦은 밤 골목길을 걸어 서로의 집으로 향하던 중, 옆에서 걷고 있던 사와무라가 툭 하고 내뱉은 말에 눈을 살짝 크게 떠 보인 미유키였다.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와무라의 눈이 가늘게 떠져있었고, 얼굴 위론 한심하다는 표정이 역력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난데없는 비난에 미유키는 살짝 얼굴을 찌푸리며 다시 묻는다.
"다짜고짜 글렀다니? 네 무례함의 끝은 도대체 어디까지냐?"
아니면 그거......신종 사랑고백이야? 눈썹을 까닥이며 묻는 미유키를 향해 사와무라는 골목길이 울릴 만큼 큰소리로 아니야! 소리를 치곤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사랑고백이라니! 진짜 글러먹었슴다! 그게 어떻게 사랑고백이야!
"이것 보십셔! 선배는 오늘 제가 가지고 있는 많고 많은 낭만 중 하나를 무참히 깨버렸다 이 말임다."
"......난 그딴 거 깬적 없는데."
솔직히 궁금하지도 않고. 이렇게 말하는 표정엔 진심이 가득했다. 미유키의 말에 사와무라는 대번 세모눈을 뜨고선 달려들어 멱살을 잡아댄다. 미유키 카즈야아아아! 내가 왜 당신이 정신줄을 놓고 다니는 바람에 잃어버린 지갑을 찾기 위해서 지금까지 학교에 남아있어야 했는데! 학교에 두 사람이 남는 경우는 영화나 만화, 드라마에선 높은 확률로 낭만적인 장면이 연출되는 이벤트라고! 평소 서로에게 마음은 있었지만 고백하기 전인 남녀 주인공이 허술한 경비 아저씨 때문에 교실에 갇힌다던가! 아, 그래! 영화 러브레터처럼 후지이 이츠키와 후지이 이츠키가 그랬듯이 자전거 페달을 돌려 전조등을 밝히는......밤의 학교는 그런 낭만이 가득한 장소인데 왜! 나는! 미유키의 지갑을 찾기 위해 교실과 복도 그리고 운동장에 엎드린 채 기어 다녀야 하는 검까! 내 낭만 어쩔 거야! 셔츠가 뜯어질 만큼 세게 멱살을 잡고선 분노하는 사와무라에게 언제나처럼 저기, 나 선배......의미 없는 저항을 해보는 미유키였다.
"그리고 사와무라......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낭만이라기 보단 밤의 학교에 사람이 남을 경우 귀신이 나타나거나 살인사건이 벌어지지, 안 그래?"
"글렀네! 답 없이 글러먹었네!"
미유키의 해석에 멱살을 놓으며 사와무라는 다시금 삿대질을 해댔다. 미유키는 특유의 싱글거리는 표정을 하고선 사와무라를 놀리기 시작한다. 그나저나 사와무라가 생각하는 낭만은 어째 너무 촌스러운데? 너무 뻔해서 웃음이 나올 정도거든? 그 말에 사와무라는 부들부들 떨며 어금니를 악물고선 중얼거렸다. 야구 바보가 믈 을겠슴끄......낭만이 므 으때스.......그 말에 미유키는 가볍게 소리를 내어 웃어 보인다. 무심결에 하늘을 올려다본 것은 그때였다. 도쿄에선 잘 보이지 않는 별이 오늘따라 웬일로 밤하늘에 드문드문 박혀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어, 별이다 중얼거리자 부들부들 떨며 자신에게 대꾸할 말을 생각해내고 있던 사와무라의 동그란 머리통이 위를 향해 움직였다. 밤하늘을 올려다본 사와무라가 잘난 척을 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뭠까? 미유키. 저 정도로 놀람까? 저건 별 축에도 못 든다고요. 나가노에선 새까만 하늘 위에 점점이 박혀있는 별들이 마치 땅으로 쏟아져 내릴 정도임다. 늘 그렇듯이 자신의 고향인 나가노에 대해 열변을 토해내는 사와무라였다. 생기 넘치는 얼굴로 나가노의 밤하늘에 대해 떠들어대던 입이 한 순간 다물어졌기에 미유키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사와무라는 여전히 밤하늘로 향해있는 시선을 옮기지 않은 채 꿈을 꾸듯 중얼거렸다.
"언젠간......"
"......?"
"언젠간 말임다. 미유키에게도 보여주고 싶슴다."
"......뭐를?"
"청색이 도는 짙은 검은빛 하늘에서 별이 쏟아져 내리는 그 광경을요."
분명 역시 네 낭만......너무 뻔하고 촌스럽잖아? 놀리기엔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사와무라의 그 말에 미유키의 얼굴 위로 서서히 미소가 번진다.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얼굴이 아래로 떨어지며 눈을 마주쳐왔다. 언제 봐도 기분 좋은 그 표정으로, 시원하게 웃는 입매를 하고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와무라를 향해 미유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