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고 있던 콜라를 입 밖으로 내뿜지 않은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입에 물고 있던 콜라가 목구멍으로 한번에 넘어가는 것까진 막을 도리가 없었기에 나루미야 메이는 콜라를 입 밖으로 내뿜는 대신, 사레가 들려 연거푸 기침을 해야만 했다. 기침이 어느 정도 가시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사와무라를 째려보는 나루미야였다.
"야, 지금 뭘 묻는 거야?"
"해봤슴까! 안 해봤슴까! 대답하십셔!"
"그러는 너는?"
너는 어떤데? 세이도 차기 에이스? 빈정거림이 묻어있는 목소리에 대번 낚인 사와무라가 펄펄 뛰어댄다. 내가 먼저 물었잖아! 늘 그런 식으로 대답을 회피하고! 비겁하다! 나루미야 메이! 이나시로의 미래가 걱정이다! 길길이 날뛰며 외치는 말에 나루미야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우지 않은 채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야, 이나시로의 미래가 거기서 왜 나와?
"너 먼저 말해. 키스 해봤는지, 안 해봤는지, 먼저 말해주면 나도 말해줄게."
"참나, 당연히 해봤죠. 백 명 정도랑 했슴다."
"......너 초등학생이지?"
저기요, 사와무라군.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그런 허풍은 안 떨거든요? 넌 진짜 몸만 컸지 완전 애구나, 애. 한심하다는 투의 목소리였다. 사실 가장 한심한 건 나루미야,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참나, 당연히 해봤죠 라는 사와무라의 말에, 그 뒤에 이어질 말이 얼척없는 허풍일거라는 사실을 예상했음에도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으니까. 어쩐지 분하다. 사와무라 에이준을 알게 된 뒤론 언제나, 늘, 분한 기분이었다.
"자, 대답했으니 이제 선배 차례임다. 해봤슴까! 안 해봤슴까!"
"당연히, 나도 해봤지. 한......천명이랑?"
이렇게 말하고선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진 나루미야였다. 아마도 이 자리에 미유키나 이츠키......누구든 제3자가 있었다면 이게 무슨 유치한 말장난이냐며 가늘게 뜬 눈으로 두 사람을 한심하게 보고 있었을 것이다. 천명이랑? 장난으로 범벅이 된 나루미야의 말에 으이이이이익! 이 금발머리야! 장난치냐고! 왜 사람이 매사에 진지하질 못함까? 그거 병임다! 병! 불치병임다! 사와무라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비난을 퍼붓기 시작한다. 상상이나 했을까? 도쿄의 왕자라고 불리는, 천하의 나루미야 메이가 유치원생도 하지 않을법한 말장난을 치며 이렇게나 행복한 얼굴로 웃을 수 있다는 걸. 펄펄 뛰는 사와무라의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고 있던 것도 잠시, 나루미야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안 해봤어."
"에?"
"안 해봤다고, 키스."
거짓말하지 마십셔. 지금 누구 앞에서 그짓말을 흠끄. 동공을 가늘게 뜨곤 험상궂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와무라의 반응에 나루미야는 뭐 씹은 얼굴을 해 보인다. 나 참, 장난을 치면 화를 내고 사실대로 말해주면 안 믿고......어쩌라는 거야?
"속고만 살았냐? 야구한다고 바빠죽겠는데 여자애랑 입술 비빌 시간이 어디 있어?"
"그치만 그런 것치곤 학교에서 틈만 나면 여자들이랑 붙어있는다고 들었슴다! 나도 정보원이 있다고!"
"......이츠키냐?"
아니? 어떻게! 알았지! 화들짝 놀라는 사와무라의 모습에 또다시 소리를 내어 웃는 나루미야였다. 원래 이렇게 웃음이 헤펐던가? 또다시 분한 기분이 들었다. 사와무라 에이준을 알게 된 뒤론 계속 분하기만 했다. 여자들이랑 붙어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키스는, 아직, 입니다. 됐냐? 사와무라? 또박또박 내뱉는 대답을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고선 노려보고 있던 사와무라가 피식 바람 빠지는 웃음 소리를 내며 서서히 얼굴을 펴기 시작했다. 진짜지요? 그럼 됐슴다. 시원하기 짝이 없는 사와무라의 말에 나루미야는 뭐가 그럼 됐슴다냐? 라고 되받아 친다. 잠시 턱을 괸 채로 생각에 잠겨있던 나루미야의 입 밖으로 가벼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근데, 나 해보려고."
"뭘요?"
"키스 말이야, 키스."
"뭣? 뭐? 누구랑? 언제! 어디서! 왜!"
"왜라니? 내가 키스를 안 해봤다는 사실에 사와무라가 너무 즐거워하니까."
"뭐? 그게 이윰까? 성질 나쁜 거 자랑함까!"
요란스럽게 방방 뛰는 사와무라의 손목을 나루미야의 손이 붙잡은 건 그때였다. 갑작스레 손목을 잡아오는 행동에 놀라 안 그래도 큰눈이 더욱더 휘둥그래진다. 쉴 새 없이 떠들던 입도, 한 순간이었지만 다물어졌다. 놀란 얼굴을 하고선 무어라 또 재잘거리려는 사와무라에게 나루미야는 잘 지어 보이는, 다소 사악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디서? 바로 여기서.
"언제? 지금."
"므므므므......무슨."
"누구랑?"
힘을 줘 붙잡은 손목을 끌어당기자 별 저항도 없이 몸이 휙 하고 끌려왔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사와무라를 쳐다보며 천천히 얼굴을 들이민 나루미야가 중얼거렸다. 시끄럽게 쨍알거리는 너랑. 자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피라도 나올 듯 시뻘겋게 물들어가는 사와무라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제서야, 줄곧 분했던 기분이 풀리는 것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