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진님(@zero_margin) 생일 축전 연성
.....인데 이건 말이 청화지 그냥 미네랑 카가미가 등장하는 논커플링 연성 같은 ㅠ_ㅠ (머리를 박는다)
오늘도 골대는 기울어져있었다. 체육이라는 수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구들로 구색만 맞추어놓은 운동장. 스포츠와는 전혀 인연이 없는, 대도시 근교의 작은 학교다운 모습이었다. 트랙의 라인은 지워져 지저분하게 흩어져있었고, 축구 골대엔 그물조차 처져있지 않았다. 하지만 트랙이나 축구 골대는 농구 골대에 비해선 상태가 양호한 편이었다. 경사가 진 땅 위에 아무렇게나 세워놓은 탓에 살짝 기울어져있는 골대엔 림만 덜렁 달려있었고, 그 림조차 나사가 살짝 풀려 불안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볼썽사나운 꼴이 아닐 수 없었다. 아오미네는 농구 골대가 똑바로 보이는 운동장 구석의 나무 그늘에 누워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기울어져 흉한 모습을 하고 있는 골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이곳만큼 조용하고 서늘한 곳이 없었기에 별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곳, 가쿠엔 고교로 진학한 뒤부터 부쩍 멍한 얼굴로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음에도 요즘 들어 부쩍 머릿속이 복잡하다. 스카우트 제의를 한 많은 고교 중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던 토오 학원의 관계자에게 농구부 아니, 스포츠 육성부가 없는 학교로 진학할 것이라고 말한 아오미네였다. 그날 저녁, 당연한 일이지만 모모이가 아오미네를 찾아왔다. 아오미네군, 어째서 토오에 가지 않겠다는 거야? 의아함으로 가득한, 한편으론 답을 알고 있는 듯한 그 얼굴이 엊그제 일처럼 선명하다. 농구, 지겨워. 두 번 다시는 하지 않을 거야. 아오미네의 말에 모모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자신이 농구를 그만두겠다는데 사츠키가 울 일은 아니라고 아오미네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정말 울고 싶었던 건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었기에. 그렇게 아오미네는 모두와 헤어져 가쿠엔 고교로 진학했고, 농구공을 손에서 떠나 보냈다.
가쿠엔 고교의 소년들은 점심 시간이나 방과 후에 축구나 야구는 종종 하곤 했지만 농구를 하기 위해 골대 앞에서 서성이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농구 골대가 놓여진 장소는 좁디 좁았고, 체육 창고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있는 농구공은 바람이 빠져있거나, 가죽이 벗겨진 것이 대부분이었다.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이 그늘을 독차지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직까진 바람에 서늘한 기운이 묻어있었지만 곧 봄은 사라지고 무더운 여름이 찾아오겠지. 이번 여름도 푹푹 찌겠구나. 오늘도 아오미네는 어김없이 기울어진 골대가 잘 보이는 그늘에 팔을 베고 누워 기운 빠지는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어이, 거기."
"......?"
“거기 그렇게 누워있으면 공 맞으니까 비켜.”
의욕 없는 얼굴로 누워서 빈둥거리던 아오미네의 귀에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 소리를 내며 고갤 비틀어 바라본 곳엔 아오미네만큼은 아니지만 까무잡잡한 피부에 강렬한 붉은 빛의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이 농구공을 옆구리에 끼고선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제서야 상체를 일으켜 소년을 똑바로 쳐다보는 아오미네였다. 소년은 아오미네에게 뒤지지 않을 큰 키와 넓은 어깨를 가지고 있었고, 근육이 보기 좋게 잡힌 몸을 하고 있었다. 가쿠엔 고교로 진학한 뒤로 항상 인상을 쓰고 다녔던 탓인지 아오미네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몇 없었는데, 특히나 이런 식은 처음이었다. 난데없이 비키라는 말에 아오미네는 얼굴을 구기며 툭 던지듯 말을 내뱉었다. 내가 왜 그래야 되는데? 까칠한 반응에 화를 낼 법도 한데 소년은 아오미네가 이상한 말을 한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공에 맞으면 아프니까 비키라고 하지, 바보냐?”
“바......보?”
“비키기 싫으면 계속 그렇게 있던가.”
그러다 맞아도 난 모른다. 무심하게 말하며 농구공을 바닥에 텅 하고 튕기는 소년의 모습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아오미네는 미간을 구기며 소년에게 무어라 말을 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왠지 모르게 맥이 빠졌기에 쳇, 짧게 혀를 찬 뒤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누워있던 곳에서 네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으로 걸어가 다시 몸을 누이는 아오미네였다. 비키라는 말을 깡그리 무시하고 계속 버틸 수도 있었지만 이상하게 내키지 않았다. 어느새 소년은 가벼운 움직임으로 골대에 공을 던져 넣고 있었다. 위태위태하게 달려있는 림이 흔들렸다. 흔들린 건 림인데 아오미네의 속 또한 요동친다. 제기랄, 거칠게 내뱉는 소리가 공기 중에 흩어졌다.
카가미 타이가, 아오미네가 차지하고 있던 골대 앞 그늘을 빼앗은 소년의 이름이었다. 부모님을 따라 건너간 미국에서 줄곧 살았고, 잠시 일본으로 돌아와 이곳 가쿠엔 고교에 전학 왔지만 6개월 뒤엔 미국으로 다시 돌아갈 예정이라 했다. 아, 물론 이러한 정보들은 아오미네가 카가미에게 직접 물어 알아낸 것은 아니었다. 어딜 가든 한 명쯤은 꼭 있는, 떠들기 좋아하고 반 아이들 모두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안달이 난 다나카가 알려준 것이었다. 다나카는 아오미네에게 말을 건네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는데, 자신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는 아오미네에게 끈질기게 친한 척을 하곤 했다. 그러던 차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오미네가 먼저 말을 붙여오자 혹시 붉은 머리에 키가 큰......까지만 듣고서도 다나카는 신바람이 나 의자까지 끌고 다가와서 카가미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전학 온 1-C의 카가미 말이지? 카가미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수다스럽게 쏟아내고 있는 다나카를 바라보며 아오미네는 생각했다. 미국이라, 요즘 같은 시대에 신기할 것도 없는 곳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멀고 멀게만 느껴졌다.
기울어진 농구 골대 앞, 카가미는 그곳에서 틈만 나면 홀로 농구를 하고 있었다. 틈만 나면 그 근처에 자리를 잡고 누워있는 아오미네와 자주 마주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쩌다 보니 서로 통성명도 했다. 남들이 들으면 곧 싸움이 벌어질만한, 퉁명스럽기 짝이 없는 대화였지만 말이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 그리고 이 주일이 지났지만 한 명은 땀을 뻘뻘 흘리며 농구를 하고, 한 명은 드러누워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것엔 변함이 없었다.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아오미네는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실력을 가진 카가미에게 놀라곤 했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어딘가 부족한 모습을 보였기에 지나가는 말로 어이, 넌 왜 덩크는 안 하냐? 방금도 충분히 가능했는데 말이야 라는, 아차 싶은 오지랖을 떨기도 했다. 그 말에 흘러내리는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카가미가 말했다. 야, 눈은 왜 달고 있냐? 림이 곧 떨어질 것처럼 불안하게 달려있는데 덩크는 무슨 놈의 덩크야. 이 동네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소중한 농구 골대라고. 자신의 말에 픽 소리가 날 정도로 비웃음을 날리는 아오미네를 띠껍게 바라보며 카가미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쓰는 골대니 망가지지 않게 조심해야지. 아, 그러냐? 아오미네는 건성으로 카가미의 말에 대답하며 속으로 그를 무참하게 비웃어댔다. 바보 아니야? 뭐라고 하는 거야? 이 학교에서, 이 동네에서 농구를 하고 있는 건 너뿐이거든? 연신 속으로 빈정거리던 아오미네는 옆에 놓아둔 잡지책을 펼쳐 얼굴을 덮었다. 농구를 하고 있는 건 카가미뿐이라는 자신의 빈정거림이 왜 그렇게 슬펐을까? 왜 자신이 속으로 뇌까려댄 말에 찔끔 눈물이 나는지 모를 일이었다.
두 사람이 농구 골대 근처에서 얼굴을 맞대는 것은 주로 수업 시작 전이나 점심 시간 때였는데, 보통 때와는 다르게 수업이 전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체육복 차림으로 농구에 푹 빠져있는 카가미의 모습이 아오미네의 눈에 들어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인파에 섞여 집으로 돌아가려던 아오미네의 발걸음이 멈춘다. 카가미를 잠시 바라보고 서있던 아오미네가 그에게로 천천히 다가가 그 주변에 가방을 베고 아무렇게나 누워버린 건 순전히 충동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방과 후인데도 불구하고 떡 하니 자리를 잡고 눕는 아오미네를 카가미가 슬쩍 한번 쳐다보았지만 그뿐이었다. 다시금 몸을 굽혀 드리블을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감고 누워있던 아오미네의 귀에 자신을 부르는 것이 확실한, 카가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왜.”
“맨날 그렇게 누워만 있으면 안 심심하냐?”
“......안 심심해.”
“엄청 심심해 보이는데.”
“야, 남이야 심심하건 말건 무슨 상관이야. 그러는 너는?”
“......?”
“넌 뭐가 재미있어서 맨날 그러고 있어? 상대도 없이 혼자서 허접하게 기울어진 골대에 골을 넣는 게 뭐가 재미있어서......”
“재미있어.”
재미있어. 그 말에 아오미네는 순간 가슴 속에 담겨있던 무언가가 울컥 치미는 기분이 들어 저도 모르게 차가운 목소리를 내었다.
“농구 따위, 뭐가 재미있어?”
“......”
“......뭐가 재미있어.”
그 말에 카가미는 움직이던 것을 멈추곤 아오미네를 돌아보았다. 둘 사이에 요상한 침묵이 흘렀다. 석양빛을 받고 선 카가미의 머리카락은 한층 더 붉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입을 꾹 다문 채 아오미네를 바라보고 있던 카가미가 진지한 눈빛을 하고선 말했다.
“어이, 아오미네.”
“......”
“농구하자.”
“......?”
“농구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가르쳐'줄게. 직접 해보면 분명 너도 알 거야."
이렇게 말하며 돌연 농구공을 아오미네에게 휙 하고 던져 건네는 카가미였다. 아오미네는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상체를 일으켜 농구공을 받아 든다. 올곧게 뻗어있는 카가미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그 두 눈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아오미네는 살짝 눈을 크게 뜨고선 카가미와 마주하고 있었다. 농구공의 가죽 겉면에 모래와 흙이 묻어있어 손바닥이 까끌거렸다. 실로 오랜만에 잡아본 농구공이었다. 아오미네는 홀린 듯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농구공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 농구, 지겨워. 두 번 다시는 하지 않을 거야. 언젠가 자신의 입으로 내뱉은 말이 머릿속에서 희미하게 떠올랐지만 그와 동시에 카가미의 외침이 울렸다. 농구하자! 그 목소리에 결심이 선 듯 아오미네는 심호흡을 하며 일어나 드리블을 하기 위해 다리를 내디뎠다. 그때였다. 꾸준히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환청이 들려온다. 달려오는 자신을 막을 생각조차 없이 무기력하게 서서 멍한 눈을 하고 있던 이노우에의 모습이 눈 앞을 스쳤다.
[너 같은 녀석과 제대로 붙을 놈이 어디 있어? 누구 놀리냐.]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공포가 스믈스믈 마음에 서린다. 자신의 앞에 당당하게 서서 올곧은 눈빛을 쏘아대고 있는 카가미 또한 결국엔 이노우에와 같은 얼굴을 하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서있는 그 모습, 참담하고 처참한 그 얼굴을 마주하는 건 두 번 다신 겪고 싶은 않은 고통이자 공포였다. 아오미네의 손에 들려있던 농구공이 힘없이 떨어졌다. 농구공은 천천히 굴러 카가미의 발 근처에서 멈춘다. 자신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카가미에게서 아오미네는 등을 돌렸다. 오늘도 여전히 기울어져있는 골대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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