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나쁜 소문이 돌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나이 많고, 배가 나오고 머리가 벗겨진, 지루하기 짝이 없는 강의를 하는 주제에 콧대만 높은 교수들이 대부분인 대학 내에서 이러한 소문은 많은 이들의 흥미를 끌기엔 적당했을 것이다. 여학생들을 유혹해서 잠자리를 가진다더라. 교수실에선 늘 여자의 신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더라. 그리고 가벼운 관계가 끝나면 그뿐, 더 이상 상대를 해주지 않는다더라. 나에 대한, 이러한 소문들은 입에서 입으로 번져갔다. 하지만 딱히 이에 대해 해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에 나는 입을 다물고 맡은 시간에 맡은 강의를 하고 집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사실 이러한 소문이 아예 거짓은 아니었기에 솔직히 누군가가 어이, 제임스 자네 여학생들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며? 라고 물어온다면 대꾸할 말은 없었다. 물론 소문처럼, 작업을 걸어오거나 추파를 던지는 모든 여학생들과 놀아나거나 한 것은 절대, 결코 아니었지만 과거에 한 여학생과 깊은 관계였던 것은 사실이니까. 그 이름을 어떻게 잊을까? 베스퍼 린드. 그녀는 검은 머리카락과 신비로운 눈동자를 가진 미인이었다.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투박하기 그지없는 내 태도 때문인지 그녀 특유의 저돌성 때문인지 처음은 말다툼으로 시작했다. 그녀는 서리가 내릴법한 차가운 목소리로 교수인 내 앞에 서서 나의 강의를 비난했고, 나는 그에 맞서 그녀를 세상물정 모르는 애송이 취급했다. 그리고선 어떻게 되었더라?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은 책상 위에 발가벗고 누운 예쁜 몸, 내 허리를 감아오던 희고 긴 다리, 뜨겁게 달궈진 교수실의 공기였다. 그 후 몇 번의 만남이 있었지만 어느 날 그녀는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고, 과거의 추억 조각이 되어버렸다.
베스퍼 이후, 몇몇 여학생들과 관계를 맺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먼저 유혹을 해온 것도 여학생들이었으며, 소문으로 떠도는 것처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짓은 하지도, 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몇몇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어느 순간부터 여학생들의 몸이나 노리는 질 나쁜 교수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이유로 내 강의가 있는 날이면 강의실 첫 줄은 공을 들여 화장을 한, 가슴 골이 훤히 보일 만큼 깊게 파진 상의 차림의, 향수를 잔뜩 뿌린 여자들로 가득 찼다. 그렇기에 그가 더욱더 눈에 띄었을지 모른다. 수업 내용은 뒷전으로 밀어두고 나와 어떻게 해보기 위해서 큰 눈을 깜빡이는 여자들 사이에 늘 그가 앉아있었다. 안경을 끼고 부스스한 머리를 한 그는 내 강의가 상당히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펜을 입에 물고 있었다. 여자들 틈바구니에 끼여있는 그는 자연스럽게 나의 시선을 빼앗았다.
그날도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몇몇 여학생들이 자신의 가슴 골을 자랑하듯 몸을 숙여댔고, 그 중에서도 대담한 여학생은 입 모양으로 저랑 자요 라고 뻐끔거렸다. 이 모든 것을 무시하며 덤덤한 표정으로 수업을 마친 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학생들을 보며 나 또한 교수실로 돌아가려 했다. 그때,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그곳엔 다름아닌 그가 있었다. 늘 첫째 줄에 앉아서 강의를 듣는, 부스스한 머리의 괴짜. 착용하고 있는 안경을 손가락으로 스윽 올리며 그는 잠시 시간을 내줄 수 있나요? 라고 물은 뒤, 내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말을 잇는다.
“실례라는 건 알고 있지만......”
“......?”
“교수님의 강의......별로라는 말을 꼭 해드리고 싶었어요.”
베스퍼 이후 내 강의에 대해 이토록 저돌적인 비판을 한 학생은 없었기에 잠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신랄한 강의 평가에 아무런 대답 없이 인상을 쓴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 또한 알아챘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 강의를 수강한 학생들 대부분은 필수과목이라 어쩔 수 없이 듣고 있는 것이고, 그 외엔 강의보다 ‘다른 것’에 더 흥미가 있어 보이네요. 특히, 첫째 줄에 줄지어 앉아있는 여자들 말이에요.”
여전히 침묵하는 나를 보며 그는 조그마한 하지만 내가 듣기엔 문제없는 소리를 낸다. 침묵은 긍정의 다른 표현이라고 하던데. 중얼거린 그는 입가에 뜻 모를 웃음을 잠시 지은 뒤,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교수에게 시비를 걸어오는 학생이라고 단순히 치부하기엔 어쩐지 천진한 구석이 있는 표정이었다.
“아, 혹시 소문이 아니라 사실인가요?”
“자네는?”
“네?”
“첫째 줄에 앉아있는 자네는 어느 쪽에 속하지? 필수과목이라 어쩔 수 없이 듣고 있는 쪽인가? 아니면 날 어떻게 해보려고 용을 쓰는 여학생들과 같은가?”
나의 질문에 피식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내고선 그는 손가락을 잘근잘근 씹으며 잠시 고민을 하는 듯했다. 평소였다면 이상한 놈 취급을 하며 상대가 민망할 정도로 무시를 해줬겠지만 놀랍게도 나는 강의실에 서서 그가 고민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각하게 고민을 하던 그는 도통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인다.
“음......엄밀히 말하자면 아직은 둘 다 아니죠.”
“아직은......이라.”
“여하튼 교수님이 착각하고 계실까 봐 알려드리는 거에요.”
“뭐를? 내 강의가 엿 같다는 걸?”
입 꼬리만 움직여 웃던 그가 하하, 제법 큰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 모습에 베스퍼 생각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 또한, 내 강의를 실컷 비웃다가 그래, 나도 내 강의가 엿 같은 건 알아. 라는 나의 말에 눈을 크게 휘며 웃었으니까. 자신이 실례가 되는 행동을 했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인지를 하고 있는 모양인지 그는 웃음을 멈추고선 실례가 많았습니다 라고 말한 뒤, 가볍게 인사를 하고선 강의실을 나가려 했다. 그런 그를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질문이 붙잡았다.
“자네, 이름은?”
강의실을 걸어나가려다가 멈춰선 그는 슬며시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거 없어요.”
“그런 거? 이름이 없다니? 이해가 안 되는데?”
“이해하려고 하지 마세요. 머리만 아파지니까, 본드 교수님.”
“......”
“가까운 친구들은 절 큐(Q)라고 부르긴 해요.”
“그래서? 나도 자넬 큐(Q)라고 부르라고?”
그 말이 뭐가 그리 이상했는지 실소를 짓던 그는 얼굴을 굳히며 웅얼거린다.
“제가 분명 ‘가까운’ 친구들이라고 말했을 텐데요.”
“......”
“뭐, 언젠간 그렇게 부르실지도 모르지만......”
말 끝을 흐린 뒤, 빠른 걸음으로 강의실을 빠져나가는 그 뒷모습에서 나는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미묘한 감정이었다. 그것은 과거와 몹시 닮아있었고, 한편으로는 너무나 달랐다. 덥수룩한 머리를 한, 자신을 큐라고 지칭하는 남학생에 대해 느끼는 이 복잡미묘하고 생경한 감정을 이해하려 해보았지만 이해하려고 하지 마라는 그의 말처럼 해답은 없었다. 짧게 한숨을 내쉰 뒤, 나는 교탁 위의 책을 챙겨 강의실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