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도 모자라 영화도 파니 이제 내 인생은 망한 듯 하다 (.....)
눈이 부실 정도로 말끔하게 닦여있는 명품 구두의 굽이 복도의 바닥과 닿으며 일정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 소리는 점차 빠르게 그리고 크게 울렸기에 해리는 자신이 거의 뛰는 것과 같은 속도로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닫곤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하지만 의식을 하고 천천히 걷기가 무섭게 다시금 걸음은 빨라졌다. 몇 분전, 비서로부터 피터 파커가 찾아왔다는 말을 들었을 땐 순간적으로 머리 속이 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잊고 있었다고, 완전히 다 지웠다고 생각했던 그 이름이 귓가에 울리자 반가움과 그리움 그리고 마음 한 켠 깊숙이 남아있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와 머리 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피터와 마주했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지만 해리는 그답지 않게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는 걸음걸이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피터에게 향하고 있었다.
갈색과 회색이 섞인 고풍스러운 대리석이 만연한 홀, 현관 앞에 서있는 피터 파커를 발견하였을 때 해리는 저도 모르게 잠시 숨을 들이켰다. 해리는 계단을 내려가지 않고 이층에 그대로 서서 피터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이러한 시선이 느껴졌는지 피터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짙은 눈썹 아래로 여전히 큰, 빛나는 갈색 눈을 가진 피터 파커의 얼굴에 반가움으로 가득한 미소가 퍼졌다. 해리는 여유로운, 아니 애써 여유로운 척을 하는 웃음을 띠며 그에게 말했다.
"10년만이네."
"8년만이지, 10년이나 8년이나 그게 그거지만...."
"어쩐 일이야?"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묻는 자신의 목소리가 냉정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별 수 없었다. 8년 만에 만난 피터는 많이 변해있었다. 다소 촌스러운 플라스틱 테 안경을 쓰고 흉물스러운 치아교정기를 착용한, 언제나 옷을 헐렁하게 입고 있어 더욱더 어수룩해 보였던 어린 소년은 이제 훤칠한 키와 탄탄해 보이는 골격을 지닌 미남이 되어있었다. 하긴, 어렸을 때도 그렇게 나쁜 얼굴은 아니었어. 이 와중에 잘도 이런 생각을 하는 구나 속으로 자조를 하고 있는 해리에게 피터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뉴스 봤어."
"..........."
"네가 어떻게 하고 있나 해서....."
피터에겐 들릴 리 없는 짧은 탄식이 해리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네가 어떻게 하고 있나 해서…..머뭇거리며 눈치를 살피는 것도, 한없이 선량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저 다정함도, 제 앞가림보단 남 걱정이 앞서는 것은 여전한 듯 했다. 저 다정함에 얼마나 도움을 받았던가? 저 다정함이 얼마나 고마웠던가? 저 다정함이 얼마나 자신을 두렵게 만들었던가?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던 피터는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기에 해리는 어서 이 대화를 마무리 짓기로 결심했다.
"지금 사람들이랑 같이 있어, 미팅 중이야."
미팅 중에 찾아왔으니 돌아가달라는 말이나 진배없었다. 피터는 예전부터 남을 배려하는 것에 있어선 눈치가 빠른 편이었기에 해리의 말을 이해한 듯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고갤 끄덕였다.
"그렇구나, 방해해서 미안."
"..........."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네가 찾아왔잖아. 그래서 와봤어."
"..........."
"반가웠다, 친구야."
"..........."
"……아버님 일은 안됐어."
천천히 돌아서는 피터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해리는 다시 회의실로 돌아가 따분하고 꽉 막힌 영감들과 회사 경영에 대한 이야기를 마저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피터를 보내고 해리 또한 뒤 돌아서서 회의실로 들어가버리면 약 8년 전에 시작된 그와의 인연은 추억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과거의 자신이 원했던 것처럼 추억은 영원히 아름다울 것이고 언젠간 서서히 옅어져 그를 온전히 잊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해리는 그러지 않았다. 결심과는 달리 계단을 천천히 내려오며 해리는 피터에게 말을 걸었다.
"치아교정기 뺐네?"
치아교정기 뺐네, 그 말 한마디에 현관을 나서려던 피터가 고갤 돌려 자신을 바라보았기에 별 수 없이 해리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해리는 얼마만인지 모를, 옛날은 여느 때처럼 입가에 웃음을 걸고선 말을 이었다.
"교정기를 빼니까 숯검댕이 일자 눈썹이 더 도드라져 보여."
여기까지 말하고 해리는 떨리는 손을 매만졌다. 갑작스레 찾아와 조금은 어색하게, 조금은 낯설게, 조금은 침통하게 머뭇머뭇 인사를 건네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던 어눌한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그곳엔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웃음을 띠고 있는 피터가 서있었다. 그래, 마치 과거의 그 어느 날처럼, 더 이상 그는 어린 소년이 아니었지만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그렇게 웃고 있었다. 크게 웃어 보이던 피터가 소리쳤다.
“돌아왔네, 돌아왔어.”
돌아왔다는 피터의 말이 어떠한 의미인지 해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기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반반 섞어 그저 미소만 띠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8년 전 말없이 사라진 자신을 원망도, 질책도 하지 않은 채 해리가 돌아왔다며 뛸 듯이 기뻐하는 점이 피터다웠다. 어렸을 적 가끔 해리의 반듯한 헤어스타일을 놀리곤 했던 것처럼 피터는 지금도 아침마다 드라이를 하냐고 물었고 해리는 웃으며 이제 빗질은 내가 하지라고 되받아 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 사이는 가까워져 있었다. 해리는 덥석 자신을 안아오는 피터의 행동에 아주 잠시 놀랬지만 곧바로 그의 등을 끌어안았다. 과거의 어느 날, 피터가 자신을 꼭 끌어안아줬던 것처럼 여전히 그 품은 따스했고, 여전히 다정했기에 조금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해리는 자신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는 피터의 손길에 몸을 맡긴 채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애써 참으며 잠시 눈을 감았다. 허드슨 강변, 인적이 드물고 질서 없이 피어있는 잡초와 들꽃이 다였던 이름 모를 언덕배기에 앉아 떠들어대곤 했던 두 소년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약 8년 전, 어린 소년이었던 해리 오스본은 1층과 2층을 잇는 길고 넓은 대리석 계단 중간에 몸을 웅크린 채 앉아있었다. 고풍스럽고 웅장한 저택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지만 너무나 넓은 나머지 정작 그곳에서 지내고 있는 사람에겐 어딘가 모를 스산함을 안겨주곤 했다. 계단 아래엔 넓은 홀이 펼쳐져 있었고, 커다란 괘종시계가 현관을 마주한 채 우뚝 버티고 서있었다. 이윽고 새벽 1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대저택에 울려 퍼지자 웅크리고 있던 해리는 몸을 떨며 고갤 황급히 들었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바라본 현관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있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그토록 기다리던 아버지가 저택 안으로 들어오길 바랬던 자신의 바람과 현실은 반대였기에 해리는 허탈한 실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늘 바빴다. 얼굴을 볼 수 있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부자가 마주하는 몇 안 되는 순간조차 아버지는 언제나 싸늘한 눈으로 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정한 말 한마디 못 듣고 자란 해리가 언제나 정에 굶주려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해리가 갓난아기일 때부터 그를 돌보아준 유모는 처음부터 아버지 그러니까 오스본 회장님이 모든 것을 내팽개친 채 일과 연구만을 붙잡고 있진 않았다고 말했다.
[분명 회장님은 마님을 떠나 보낸 뒤 그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렇게 열심히 일을 하고 연구를 하시는 거에요.]
자신을 낳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아버지가 몹시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은 해리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깊은 밤 종종 아버지는 어두컴컴한 서재에 앉아 벽에 걸린 어머니의 사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해리가 지금보다 더 어렸던 어느 한때, 집으로 찾아온 손님과 아버지의 대화를 우연히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크고 두꺼운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친구로 추정이 되는 손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아내가 죽은 건 해리 때문이야. 차라리 그녀 대신 해리가….]
아무리 어렸다 한들 아버지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를 정도로 해리는 둔하지 않았다. 그 날 해리는 자신의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밤새도록 울었다. 아버지에게 자신은 단순히 어머니를 죽이고 태어난 무언가에 불과했다. 소중한 사람을 빼앗아간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30분마다 울리게끔 되어있는 괘종시계가 한번 더 울렸다. 해리는 오늘도 오지 않을 아버지를 기다리는 자신이 점점 비참해지기 시작했다. 전화를 걸어볼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분명 불호령만 떨어질 것이 뻔했다. 휴대폰을 몇 차례 만지작거리던 해리는 울컥 가슴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에 들고 있던 것을 계단 아래로 던져버리려고 팔을 세차게 들었다. 하지만 이내 모든 행동을 멈춘 채 치켜든 팔을 내리지 않고 고개만 다시 숙일 수 밖에 없었다. 가늘게 떨리고 있는 어깨는 해리가 울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소리조차 내지 않으며 눈물만 흘리고 있던 해리의 손엔 얼마나 많이 꺼내보았는지 가장자리가 다 닳은 아버지의 사진이 들려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렇게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서 눈물을 흘리다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해리는 굳건히 닫혀있는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더 이상 스산한 저택 안, 어린 소년에겐 과분할 정도로 큰 방에 누워 울다가 지쳐 잠드는 것은 싫었다. 해리는 정원 한 켠에 자신이 뚫어놓은 비상구를 통해 저택을 나와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저택은 허드슨 강변에 위치하고 있었고, 강을 따라 뛰고 있는 해리의 눈엔 달빛을 받아 빛나는 물결이 들어왔다. 선명히 보이던 물결은 시간이 지날수록 뿌옇게 번져갔다. 몇 주전 아버지가 저택을 떠날 때, 해리는 저도 모르게 아버지의 팔을 잡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팔을 잡은 아들에게 쌀쌀맞기 그지 없는 눈을 하고선 작은 손을 뿌리쳤다. 언제까지 어리광만 피울 거냐, 한심한 놈. 그 눈빛과 목소리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특히나 오늘처럼 어둠이 온 세상을 덮어버린 듯 침묵만이 감도는 새벽에 아버지의 꿈을 꾸곤 눈을 뜬 날엔 더욱 그러했다. 원망은 사무쳤고, 그보다 몇 배는 강한 그리움과 외로움이 밀려들어 몸부림을 쳐야 했다. 한참을 달리던 해리는 칠흑 빛 하늘에 대고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악을 쓰며 달리던 중 그만 앞을 보지 못하고 돌에 걸려 넘어져 듬성듬성 잡초와 들꽃이 피어있는 흙 바닥을 굴렀다. 흙투성이가 된 몸을 일으킬 생각도 하지 않고 넘어진 그대로 엎드려있던 해리는 그제서야 소리를 내어 구슬프게 울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저기…..”
설마 이런 시간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생각조차 못했던 지라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해리는 화들짝 놀라며 고갤 들었다. 넘어져있는 자신의 앞에 성능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 희미한 빛의 랜턴을 들고 있는 소년이 서있었다. 촌스러운 안경을 비스듬히 쓰고 멀뚱멀뚱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던 소년이 입을 열어 말을 이었다. 어둠 속이었지만 소년의 입술 사이로 치아교정기가 보였다.
“일으켜줄까?”
소년이 손을 내밀었지만 해리는 왠지 모를 짜증이 치밀어 올랐기에 엉망인 얼굴을 손바닥으로 아무렇게나 닦으며 소리를 질렀다.
“됐어! 꺼져!”
“…..아니, 꺼지라고 해도…..”
“남이 뭘 하건 상관하지 말고 네 갈길 가라고!”
“…..아니, 그게……”
소년은 주춤거리며 뒷머릴 몇 차례 긁더니 해리가 넘어져있는 곳을 랜턴으로 비추었다. 자연스럽게 해리의 시선은 빛을 따라갔고 자신의 몸 아래 에나멜 선이 감긴 대못과 전구 몇 개가 놓여져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위로 해리가 넘어졌기에 전구는 산산조각이 나있었지만 운이 좋았는지 파편에 찔린 상처는 없었다. 그제서야 해리는 소년이 자신을 일으켜주려고 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해리가 신경질적으로 몸을 일으키자 소년은 물었다.
“다친 곳은 없어?”
“신경 꺼.”
“어떻게 신경을 꺼.”
“……뭐?”
“이런 새벽에 너처럼 예쁜 애가 울고 있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써.”
두 사람 사이엔 잠시 적막이 흘렀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던 해리는 소년이 분명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는 생각에 빽-하고 크게 소리질렀다.
“너 맞을래? 누구 놀려?”
“놀리는 거 아닌데…..”
해리는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에 사납게 소년을 쏘아보았지만 상기된 얼굴로 소리를 지르고 있는 자신과는 달리 소년은 너무나 침착한 표정으로 눈을 둥그렇게 뜨며 놀리는 거 아닌데…..라며 말을 흐렸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끝까지 사람을 놀릴 작정인가? 어떻게 해야 이 얼빠진 놈이 자신의 눈 앞에서 사라질까 고심을 하고 있던 중, 갑자기 소년은 해리의 얼굴 쪽으로 손을 뻗었다. 피할 새도 없이 소년은 해리의 긴 앞 머리카락을 살며시 잡아 옆으로 걷으며 말했다.
“이렇게 예쁜 눈을 하고 있는데 놀리는 거라니 말도 안돼.”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소년의 말에 바보처럼 얼빠진 얼굴로 가만히 서있는 해리였다. 소년은 한번 싱긋 웃어 보이곤 줄줄 흘러내리는 안경을 똑바로 한 뒤,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해리가 망가트린 전구들을 골라내고 있었다. 단시간에 너무나 많은 감정변화를 겪은 뒤라 급격히 피로가 몰려오는 것을 느낀 해리는 더 이상 화를 낼 기력조차 없었기에 한숨을 내쉬곤 퉁명스레 소년에게 물었다.
“그 쓰레기들은 뭐야?”
“아 이거?”
희미한 랜턴의 빛이 전부인 검은 어둠 속에서 소년의 옆 얼굴이 이상하리만치 밝게 빛나고 있었다. 무척이나 즐거운 듯 소년은 웃고 있었는데,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덩달아 해리의 마음도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해리는 잠시 넋을 놓고 소년의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었고, 소년이 고개를 돌려 자신과 눈을 마주쳐왔을 때, 황급히 시선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괜스레 값비싼 구두로 흙 바닥을 긁고 있는 해리에게 소년이 말했다.
“멋진 풍경을 보여 줄까?”
해리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소년은 주머니에서 여분의 전구들을 꺼내 에나멜 선을 연결하기 시작했고, 해리는 입을 굳게 다문 채 그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어디서 났는지 모를 커다란 자석을 꺼내든 소년은 다시 해리를 바라보며 싱긋 웃어 보였다. 소년은 에나멜 선이 칭칭 감겨있는 대못에 자석을 가까이 대고 사정없이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언덕배기에 하나 둘, 빛의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몇 개의 전구를 연결했는지 모를 정도로 하나 둘 우후죽순으로 솟아난 빛은 약하지만 제법 밝게 주변을 비추고 있었다. 해리는 아- 짧은 감탄을 내뱉었다. 짙은 어둠을 수놓는 빛들을 바라보고 있던 해리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곧 언덕을 수놓은 빛들은 사라졌고, 희미한 랜턴만이 다인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빛들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해리는 시선을 먼 곳에 고정시킨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소년은 해리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옆에 가만히 앉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이윽고 해리가 옷깃으로 눈가를 닦아내기 시작하자 소년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종종 들러, 난 여기서 줄곧 이러고 노니까. 눈물도 나오지 않을 만큼 멋진 것들을 보여줄게.”
해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소년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편안한 미소를 띠고 있는 얼굴을 한 채 자신을 바라보는 해리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소년은 눈을 마주쳐왔다. 어느 깊은 새벽, 피터 파커와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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