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은 유난히도 더운 느낌이었다. 심술궂게 내리쬐는 햇살을 피해서 그늘로 몸을 숨겼지만 공기 중에 가득한 열기까지 피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얼굴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고, 입고 있는 옷에도 땀이 스며든다. 상황이 이쯤 되자 미유키는 답지 않게 힘없는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더워."
"미유키 카즈야......"
"응?"
"더우면! 좀! 떨어지란 말이다!"
이 삼복더위에 자신의 허리를 뒤에서 끌어안고선 등에 바짝 몸을 붙이고 앉아있는 미유키에게 결국 소리를 지르는 사와무라였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이런 날씨에 꼭 이렇게 들러붙어있어야 직성이 풀림까! 사와무라의 목소리는 분노로 가득했지만 미유키는 떨어질 생각이라곤 전혀 없는, 상큼한 표정으로 웃어 보인다. 아니야, 더위쯤은 뭐, 좀 참아볼게. 그 말에 대번 도끼눈을 떠 보이는 사와무라였다.
“참아보지마! 애초에! 댁이 참을만하다고 한들 내가 더워죽겠다고! 이거 놔!”
사와무라는 자신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미유키의 양팔을 떼어내려고 있는 힘껏 용을 써댔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허리를 끌어안은 팔엔 더욱 힘이 들어갔다. 아, 좀! 급기야 손을 뻗어 싱글싱글 웃고 있는 얼굴을 밀어내며 사와무라는 외쳤다. 당장 떨어지지 못함까! 크악! 소리를 지르는 그 모습에 갑자기 표정을 싹 바꿔 정색을 하는 미유키였다.
"사와무라, 실망인데? 친구들과는 이렇게 잘만 붙어있더니 말이야."
“그러니까! 그런 게 아니라고 했잖아!”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렇게 허리를 끌어안고 몸을 딱 붙이고 서있는걸 내가 다 봤는데......”
이익, 사와무라는 진심으로 짜증이 난 듯 이를 악 물곤 얼굴을 구겼다. 몇 시간 전, 점심시간의 일이었다. 사와무라는 매점 앞에 모여있는 반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고, 그 또래의 친밀한 스킨십이 자연스럽게 오고 가고 있었다. 친구들 사이에 서서 큰소리로 떠들며 웃고 있던 사와무라의 눈에 저 멀리 캔커피를 마시며 띠꺼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미유키가 들어왔다. 그제서야 아차, 싶은 마음에 자신의 어깨와 허리를 감고 있는 친구들의 팔을 걷어냈지만 미유키의 표정은 여전했다. 가라앉은 눈빛에 사와무라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미유키에게 고개만 가로저어 보일 수 밖에 없었다.
하여간 질투가 심하다니까. 사귀기 전엔 이렇게 질투가 많은 성격인지 꿈에도 알지 못했다. 어디 그뿐인가? 좋아한다고, 사귀자고, 먼저 말을 꺼낸 것도 미유키였다. 그때 사와무라는 미유키가 또 저를 놀리려고 든다는 생각을 먼저 했었다. 하지만 언제나 당당한 그래서 가끔은 얄밉기까지 한 미유키 카즈야가 자신의 앞에 서서 상기된 얼굴로 말까지 더듬는 것을 보며 그 고백이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사와무라는 그 어느 때보다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반 친구들과 붙어서 수다 좀 떨었기로서니 이렇게 들러붙어 질투를 해대는 미유키의 행동에 분통이 터지는 사와무라였지만 그가 고백을 했던 당시를 떠올리자 짜증을 내고 있었던 것도 잊고선 웃음을 터트렸다. 정색을 하고 있던 미유키는 왜 웃어? 라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사와무라를 바라보았다.
“미유키, 꼴사납슴다.”
“뭐?”
“질투하는 거요. 꼴사나운데......한편으론 엄청 귀엽기도 함다.”
질투라니, 무슨. 얼굴을 찌푸리며 뒷머릴 긁적이는 미유키의 반응에 사와무라는 몸을 돌려 그를 와락 끌어안는다. 이러한 사와무라의 행동에 놀라 뒷머릴 긁적이던 손이 멈췄다. 미유키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며 사와무라는 즐거운 듯이 말을 했다.
“그럴 거 없슴다.”
"......?"
“내가 사귀고 있는 건 미유키 카즈야, 당신 아님까? 그러니까 질투할 필요 없슴다.”
밝은 목소리로 말하곤 특유의 쾌활한 웃음소리를 내는 사와무라였다. 벙찐 표정을 하고 있던 것도 잠시, 미유키 또한 웃으며 안겨온 사와무라를 끌어안았다. 정말 너는......끝말을 흐리며 미유키는 생각했다. 도무지 사와무라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화가 나도 결국 따스한 그 말 한마디에 모든 마음이 풀어진다. 질투할 것 없다는 그 말 한마디에 모든 걱정이 사라졌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신기한 일이었다.
"사와무라."
"네?"
"그렇다면 친구들과는 못하는 걸 지금부터 해볼까?"
"뭘요? 야구요? 지금 휴식시간 아님까? 캐치볼 할까요?"
확실하게 던져 보이겠슴다! 신이 나서 일어서려는 사와무라를 잡아 자리에 도로 앉히며 미유키는 눈을 가늘게 뜨고선 웅얼거렸다. 그거 말고, 사귀는 사이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 말이야. 자신의 말에 멍청한 표정으로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던 사와무라가 갑자기 화악하고 얼굴을 붉혔다. 뭐......뭐라는 거야? 이 변태 포수야! 부끄러워하며 시선을 피하는 사와무라의 뒤통수를 손으로 살며시 감싸며 미유키는 점점 그와의 거리를 좁혔다. 사와무라와의 거리를 좁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