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지루했던 고전 수업이 막 끝난 참이었다. 시끌시끌한 주변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키고 앉아 창 밖을 바라보고 있던 후루야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벼락같이 울렸다. 자신을 이렇게 큰 소리로 부를만한 사람은 전교를 통틀어 단 한 명뿐이었기에 후루야는 창 밖으로 향해있는 시선을 굳이 거두지 않으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굳이 내가 반응하지 않아도 코미나토가 곧 아는 척을 할 테지. 아니나 다를까 코미나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에이쥰군, 웬일......하지만 코미나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두다다다 뜀박질을 치는 소리가 온 교실에 울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후루야의 앞까지 달려온 사와무라는 과격하게 책상을 손으로 내리치며 소리를 질러댔다.
“후루야! 이 자식아! 사람이 부르면 대답을 하라고! 무시하냐?”
“......”
그제서야 자신을 올려다보며 무슨 일이냐는 듯 눈빛을 쏘아대는 후루야에게 사와무라는 흠흠 헛기침을 두어 번 한 뒤, 주머니에서 부스럭 무언가를 꺼냈다. 사와무라가 후루야의 코 앞에 들이민 것은 다름아닌 푸른색의 휴대용 아이스팩이었다. 후루야가 그것에 대해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사와무라는 어색하게 웃으며 안 그래도 큰 목소리를 한층 더 높이며 말했다.
“넌 약골이라 걸핏하면 더위 먹고 빌빌거리니까 이거 써!”
난 너랑은 달라서 이딴 거 필요 없거든! 널 밀어내고 에이스가 될 몸이니까! 후루야는 사와무라가 내민 아이스팩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러한 멋쩍은 반응에도 굴하지 않고 책상 위에 아이스팩을 떡하니 올려놓으며 사와무라는 평소처럼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사와무라가 자신의 앞에서 쉴 새 없이 떠들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소리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자신은 정말 마음씨가 비단결 같다느니, 고마움을 알라느니 연신 쨍알거리는 사와무라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던 후루야가 천천히 입을 뗐다.
“너......”
“......?”
“......시끄럽고......귀찮아.”
시끄럽고 귀찮아. 후루야의 말에 어벙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그도 잠시, 사와무라는 곧바로 화를 내며 날뛰기 시작했다. 교실 내의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는 것도 개의치 않고선 삿대질까지 해가며 분노하는 사와무라였다. 후루야! 이 자식! 남은 기껏 생각해서 들고 왔더니! 너 따위를 조금이라도 배려하려고 했던 과거의 내가 원망스럽다! 착한 게 죄지! 후루야는 소란을 피우는 사와무라에게서 시선을 돌려 다시금 창 밖을 바라보았다. 완벽하게 자신을 무시하고 있는 후루야의 태도에 사와무라는 더욱더 길길이 날뛰려 했지만 예비종이 울리고 있었기에 자신의 반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 심사가 꽈배기처럼 베베 틀린 놈아! 내가 두 번 다시 널 챙기면 사람이 아니다아아아! 반으로 돌아가는 와중에도 사이렌처럼 울려대는 사와무라를, 한번쯤 쳐다볼 법도 한데 후루야는 끝내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코미나토는 웃으며 후루야에게 다가가 후루야군, 에이쥰군은 널 생각해서 아이스팩을 가져온 모양인데 라는 말을 건네려 했다.
하지만 코미나토가 말을 붙이기 전에 후루야의 고개가 천천히 움직였다. 창 밖을 향하고 있던 무심한 시선이 책상 위에 놓여있는 아이스팩에서 멈춘다. 후루야가 그것을 집어 들어 교복 주머니에 넣는 것을 본 코미나토의 눈이 살짝 커졌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교과서를 펼치는 얼굴은 여전히 무뚝뚝했지만 꾹 다문 입매 위로 아주 살짝, 미세한 기쁨이 맴돌고 있었다. 벙찐 얼굴로 후루야를 바라보고 있던 코미나토의 얼굴 위에도 슬며시 미소가 피어 오른다. 하긴, 솔직하지 못한 건 에이쥰군도 마찬가지였으니까.